우리 엄마의 프로필 사진이 꽃인 이유

2021. 4. 26.Me/2021

 

서울숲에서 맞이하는 튤립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맘때쯤 서울숲에 튤립을 보러 간 것은 벌써 두 번째로 내가 또 춥디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고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아직 코찔찔이 아기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20대의 후반에 들어섰고 서른 앞에 고작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꽤 고가의 가방을 선물로 주셨는 데, 아버지가 웃으시며 ' 네가 들고 다니면 가짜인 줄 알겠다. ' 라고 하셨고 나는 무슨 소리냐며, 벌써 나도 서른이라고 했더니 아주 깜짝 놀란 것 같은 표정으로 한 동안 나를 쳐다보셨다. 아직 집에서는 앞머리를 내리네 마네 하고 있는 딸이 벌써 서른을 앞두고 있다는 것에 아주 놀라셨겠지. 나도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어머니께 ' 엄마, 나 곧 서른이야. ' 라고 카톡을 보냈더니 ' 마흔 넘은 줄 알았는 데.' 라는 답장이 돌아와 하하 웃으며 요상꾸리한 기분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있었다. 

 

최근에 유투브에서 ' 엄마들의 프사는 죄다 꽃이다. ' 라며 영상에 출연한 게스트 및 스태프 분들의 어머니의 카톡 프사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았는 데, 그 영상을 보고 ' 진짜 왜 그럴까? ' 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비교적 Young하신 우리 어머니의 프사는 우리 집 댕댕이지만 배경 사진은 집에서 키우는 화분들이길래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 주말은 그 이유가 뭘까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20대라서 40대나 50대 어머님들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생각을 해보자면, 꽃 사진이란 내게 드디어 '그' 시간이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겪은 20대는 무진장 바쁘고 매일마다 흔들리고 오직 세상의 중심이 나인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인듯 하다.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며, 학교며, 친구들과의 약속이며 늘 할 일이 있고 주변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고 꽃구경을 가도 주변의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20대 중반에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꽃구경 다운 구경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대부분 꽃구경 시즌에는 대학교의 중간고사로 바빴던 기억뿐이다. 취업을 하고 내게 주어진 20대 후반의 시간에는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에 바쁘고 더 큰 미래를 꿈꾸기에 현실보다는 꿈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모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생각에 빠져 아름다운 꽃 밭 속에 있어도 내 기분이 나쁘면 그곳은 어두운 가시밭길, 내 기분이 좋으면 쓰레기 더미도 즐거운 통근길이었다.  

 

30대를 앞둔 지금, 먼저 30대가 된 선배와 직장 동료 분들을 보며 내 30대도 20대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는 더 치열하게 내 밥 그릇을 걱정할 것이고 길을 걸어 다닐 때는 돈 걱정, 건강 걱정 여러 걱정을 하며 주변을 살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난 얼마나 더 바쁠까, 그렇게 바쁘게 세월을 보내고 어느 순간 고개를 드니 꽃이 잔뜩 피어있는 계절을 맞이한다면 난 어떨까. 내 머리 위에 꽃이 피어있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처음에는 단순히 예쁘다, 또 꽃이 피었네. 정도 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내 내 마음은 벅차오를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느라, 그렇게 바쁘게 주변 사람들과 떠들고 상처 받느라 내가 걷는 이 길이 꽃이 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 꽃이 얼마나 예쁜지도 모르고 지나쳤었는 데 내게도 드디어 이 꽃이 얼마나 예쁜지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니, 그 시간이 찾아왔다니 하는 마음으로 벅차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꽃 구경을 할 것 같다. 이 꽃이 빨간색이었구나, 이 꽃은 겉잎과 속잎 색이 달랐구나. 벚꽃의 계절을 벌써 20번도 더 넘게 지나쳤는 데 아직 벚꽃 하나에 꽃잎이 몇 개가 나는지 모르는 내가 그때가 되면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찾아올까. 어쩌면 어머님들이 느끼는 꽃의 아름다움은 드디어 그분들에게 꽃이 예쁘다는 것을 천천히 느낄 수 있는, 그리고 그 꽃의 아름다움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그녀들에게도 찾아왔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내가 걷는 이 길이 꽃밭인지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고 나 하나 챙기기에도 벅차지만 나도 내 머리 위의 꽃이 예쁘다는 것을 느낄 때 쯤에, 꽃이 예쁘다는 사실이 벅찰 정도로,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너무 기뻐 나누지 않고서야 성이 풀리지 않을 때가 오면 비로소 주변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려나 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고민을 마쳤다. 우리 엄마 또는 그 누군가의 어머님들의 프로필 사진이 내년에도 꽃이기를 바라며 나도 그 시간까지 내 인생을 잘 다듬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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